[데일리즈 寒井 박춘식 자유기고가]
텅스텐 광맥의 산줄기는 뻥뻥 뚫려 황폐되니.....

효민공 묘역 뒤편으로 관음사로 향하는 산길을 100m쯤 올랐을까? 왼편 계곡으론 토사(土砂)가 흘러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둔 사방댐이 있는데 이리로 내려서면 높이가 1.5m, 폭이 2m정도 되는 동굴이 숨겨져 있습니다. 입구는 철창으로 잠겨 있는데 그 깊이는 가히 알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동굴들의 정체는 무얼까요?
남현동 산57-4번지,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50년대 중반까지 주로 텅스텐을 캐던 광산이었습니다. 텅스텐(tungsten)은 스웨덴어로 '무거운(tung)+돌(sten)'이라는 뜻이며 우리나라 말로는 중석(重石)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무겁고 단단하며 금속원소 중에서 녹는점이 가장 높기 때문에 백열전구의 필라멘트 재료로 쓰이고 각종 군수물자 특히 탱크의 장갑판은 텅스텐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군수물자 조달을 위하여 조선에서 수탈해간 흔적을 이 곳 관악산에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관악구 남현동 산57-4번지와 산69번지 부근의 20여 기의 동굴들은 지금은 붕괴되거나 폐쇄되었지만, 한때 중석 외에도 구리, 아연, 금 등이 생산된 동굴들 이었습니다. 계곡 위의 이 곳 능선에는 무너진 동굴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서든 금이나 구리가 생산될 만큼 생산 분포지역이 아주 넓습니다. 하지만 그 양이 적어서 수익성이 떨어지다 보니 대개는 폐광이 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초 한반도는 열강들의 이권다툼 속에 자원의 황폐화를 가져왔는데, 특히 미국과 영국 등은 금광의 채굴권을 따다가 마구잡이로 금광을 개발하였습니다.
금을 흔히 '노다지'라고 부릅니다. 노다지의 어원이 ‘No Touch’라고 하는 이야기도 미국과 영국의 금광 채굴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다지의 어원은 ‘노두지(露頭地)’라고 합니다. 노두지란 금, 은 등의 광맥이 지표면으로 드러난 지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노두지가 발견되면 노터치라고 푯말을 붙였을 것이고 조선의 광부들은 노터치를 노두지라고 읽다가 차차 영어식 발음인 노다지가 되지 않았을까요?
남현동 산57-4번지와 산69번지엔 20여 기의 동굴들 외에 새로운 또 다른 동굴이 있습니다. 외부로 보이진 않지만 2016년에 개통된 강남순환고속도로가 바로 이 밑으로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관악산의 후봉은 텅스텐이 생산되던 강한 산줄기이었건만 이렇듯 여기저기에 뻥뻥 뚫린 모습은 마치 골다공증으로 병들어 가는 환자의 뼈대처럼 보이니 참으로 측은하게 느껴집니다.
군데군데 보이는 붕괴된 광산의 흔적들을 지나서 5분쯤 걸으면 전통사찰 관음사에 도착하게 됩니다.
관악산 남쪽 청계산 그늘 의 관음사(觀音寺)....

관음사는 안내판에서 신라 제51대 진성여왕 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비보사찰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전통사찰의 흔적이라고는 300년 된 느티나무가 유일하며 건물들은 1970~90년대에 중건된 사찰의 모습일 뿐입니다. 게다가 조선초기의 대문장가 변계량(卞季良)의 시 속에서 관음사는 '冠岳之南淸溪陰(관악지남청계음): 관악산 남쪽 청계산 그늘'에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관악산 북쪽에 가까우니 정말 이 절이 그 절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의구심을 뒤로하고 관음사 입구 계단을 오릅니다. 입구 담장 아래에는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쓰여진 비석이 있습니다. 그 뜻인즉, '바로 이 마음이 부처요, 마음 가는 곳이 곧 부처'라고 중생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아 하! '이 절이 그 절이면 어떻고 그 절이 아니면 어떠리요.'라고 하는 듯도 하여 관음사에 대한 잠시의 의구심을 날려버리게 합니다.
입구의 계단을 올라서면 관음사 현판이 있는 협문(夾門)이 있습니다. 협문은 작은 키의 성인들고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 설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자연스럽게 불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절집에 들어서게 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그런데 문을 들어서니 관음전(觀音殿)이 아닌 대웅전(大雄殿)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개의 관음성지엔 관음보살을 모시는 관음전(觀音殿)이나 원통전(圓通殿)이 있건만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웅전의 좌측으론 이 곳 관음사를 상징하는 오래되지 않은 석조관음보살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관음보살(觀音菩薩)은 관세음보살, 관자재보살이라고도 하는데 이 땅에 중생들을 구도하기 전까지 부처가 되심을 미루시고 대자대비(大慈大悲)로서 현세의 중생 구도를 서원(誓願)하신 분입니다.
석조관음보살의 전방 70미터쯤엔 명부전(冥府殿)이 있습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시는 곳으로 지장보살은 지옥이 텅텅 빌 때까지 부처가 되심을 미루시고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보살입니다.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은 현세(現世)와 내세(來世)에서 각각 인간을 구도하시는 보살이시니, 이 두분이야 말로 참으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의 이름만 간절히 부르기만 해도 그 가피(加被)을 입을 수 있다고 하니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 숙여 염(念)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석조관음보살상 옆에는 샘이 있어서 감로수(甘露水)가 흘러나오고 그 뒤엔 용왕각(龍王閣)이 있습니다. 산속에 웬 용왕각일까? 그런데 정말 특이하게도 관악산 여기저기엔 용왕을 모신 곳이 꽤나 있습니다. 상불암, 금강사, 만장사...등 이 또한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함일까요?
용은 구름과 천둥과 비의 신이며 샘과 우물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농사를 천하지대본으로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에 가뭄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명산대천(名山大川)에서 구름과 비의 신(神)이자 샘과 우물의 신(神)인 용에게 기우제(祈雨祭)를 지냈습니다.
실록의 기사를 보면 세종2년에 '오악(五岳)과 강에서 기우제를 지낼 것을 고하니 그대로 허락하였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오악'은 백악산(白嶽山), 관악산(冠岳山), 치악산(雉岳山), 감악산(紺嶽山), 송악산(松嶽山)입니다. 현종8년에도 '중신을 보내어 저자도(楮子島), 용산강(龍山江), 관악산(冠岳山)에 기우제를 지냈다.'고 되어 있으며, 그 밖에 조선왕조실록의 여러 기록들을 볼 때 관악산은 옛부터 국가에서 관리하는 기우제를 지내왔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비를 관장하는 것은 용신(龍神)이기에 관악산 여기저기에 용신각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여 집니다.
한편 불교에서의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찰의 여기저기엔 용의 그림이나 조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찰내의 대웅전이나 극락전 등을 보면, 흔히 전면의 중앙 기둥에 한 쌍의 용머리 조형이 있고 그 안쪽이나 건물의 후면엔 용꼬리 조형이 있게 되는데, 이는 용이 끄는 배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인 사바세계에서 부처님의 나라인 극락정토에 갈 때 타고 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또 사찰내의 범종의 상단에 종뉴(鍾鈕)가 대개는 용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용뉴(龍鈕)라고도 하는데, 이 용의 이름이 포뢰입니다. 포뢰는 용이지만 고래를 무서워해서 고래를 보면 크게 비명을 지른다고 하며 그래서 범종을 치는 당목(撞木)도 고래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즉 고래당목으로 범종을 치면 포뢰가 놀라 소리 지르듯 종소리가 아주 먼 곳까지 울려퍼지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불교 속의 용왕은 불교를 수호하는 신이긴 하나 그 격이 조금 낮기 때문에 그 건물은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 즉 용왕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찰에는 대웅전, 비로전, 극락전, 관음전 등이 있는가 하면, 격이 낮은 산신님, 칠성님, 독성님을 모시는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이 있습니다.
왕을 존칭하는 전하(殿下)보다 대통령 등를 칭하는 각하(閣下)가 낮고 각하보다는 합하(閤下)가 낮다는 등 건물에도 지위고하(地位高下)가 있다니, 참으로 부처님 답지가 않습니다.
이제 관음사를 나와 우측 담벽으로 걸으며 전망대바위로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