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이제 친구의 질문, 즉, 고전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인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먼저 나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으므로, 그동안 읽어 온 고전들 역시 대부분 영문학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고대영어로 쓰인 영웅 서사시부터 중세영어로 쓰인 드라마, 근대영어로 쓰인 소설에 이르기까지, 덧붙여 미국문학사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근대의 시와 소설, 드라마까지, 수업과 병행하여 읽었던 상당수의 작품들이 이른바 영미문학의 고전에 포함되는 바, 우선 생각해 볼 것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하여 그 분야의 고전만큼은 필수적으로 읽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철학이 전공이라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을 반드시 읽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중국의 제자백가 중에서 도교가 전공이라면 노자와 장자를 읽어야 그 흐름과 사상을 알 수 있듯, 무엇보다도 자신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는 분야에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책들을 우선적으로 깊게 읽는 것이 고전을 이해하고 추후 전문지식의 확대를 위해서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항이 있는데, 전공 분야의 고전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100% 진리는 아니며 내 삶의 경험과 깊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전 중에 현대의 과학과 기술적인 측면으로 볼 때 오류 투성이의 책도 얼마든지 있고, 사유의 출발부터가 왜곡 또는 날조된 것도 있다. 그러한 것마저 고전이라고 해서 반드시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요약하면 자신의 전공과 관련 있는 고전은 가능한 빠짐없이 읽되 고전이 풍기는 분위기와 무거움에 압도 되어 그것이 담고 있는 사실 상의 오류나 경험상의 비약 또는 잘못된 추론마저도 모두 올바른 것으로 인식할 필요는 없다.

두 번째, 전공과의 관련 하에서 고전 읽기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나의 경우는, 영미문학과 관련하여 세계문학 중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단테의 『신곡』, 도스토예프스키의 전 작품, 노발리스의 『푸른 꽃』, 프리드리히 실러의 『발렌슈타인』,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스탕달의 『적(赤)과 흑(黑)』, 프랑수와 비용의 『유언시(遺言詩)』등을 대학시절에 읽고서 지적인 자극을 받았고 그 결과 사고의 다양한 측면을 경험했는데, 이처럼 전공과 관련하여 가능한 폭넓은 고전 독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고전들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지만, 인간성의 보편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그렇게 드러낸 인간의 여러 모습들을 가감 없이 제시하고 있으므로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 그 누가 읽더라도 인간과 그의 행동, 성격 따위에 대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위에서 나는 고전을 문학 고전과 비문학 고전으로 세분했는데, 내가 읽어 온 고전도 대부분 문학 고전이고 아마 일반인들도 고전하면 대개 문학 고전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문학 고전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계기가 있었다면 아마 30대 중반이던 2001년에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일본의 저널리스트가 쓴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읽고 나서 부터였을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나는 대학 강의를 막 시작했던 터에, 문학적인 감수성 보다는 더욱 지성적으로 나와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추구하고 분석적인 시각과 정교한 지식을 추구하고 있던 때였는데, 그 때 나의 눈을 열어 줄 책을 찾다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게 되었고 그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논픽션 독서의 중요성에 자극을 받아 이후 나는 문학 고전은 가능한 읽지 않게 된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문학 고전은 인간에 대한 지성적 이해보다는 감성적 이해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아무리 사실적이라 해도 현실의 재구성에 지나지 않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문학 고전만으로는 아무래도 총체적으로 나와 세계, 우주에 대한 내 사고의 폭과 넓이를 확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그전에 비문학 고전을 아예 읽지 않았던 것은 아니어서, 플라톤의 『향연』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니체의 『비극의 탄생』,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자서전』, 『논어』와 『맹자』의 일부 등에 걸치는 읽기는 꾸준히 해오고 있던 터였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 뿐이다.
그 뒤로 나는 지금까지 가능한 문학 고전은 읽지 않고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예술에 걸치는 다양한 분야의 비문학 고전만을 읽어 왔다.
특히 애호하여 수시로 꺼내 읽고 또 읽는 비문학 고전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 헤로도토스의 『역사』,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 월터 페이터의 『르네상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노담(老聃)의 『노자』, 장주(莊周)의 『장자』,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네 번째, 20세기에 나온 책들 중에도 고전이라 부를만한 저작들이 있을까? 나는 ‘그렇다’라고 답하겠다.
위에서 고전이란 짧게는 100년에서 길게는 2,000년에 걸치는 기간에 걸쳐 검증된 책이라고 말했는데, 대개의 서적사가들이나 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이 기준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기준에 들지 못한다고 해서 이미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책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논문이나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이미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으니 현대에 나온 책들을 읽는 것이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지적인 조류를 따라 갈 수 있는 좋은 방법임은 확실하다.
특히 고대와 중세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천문학의 경우, 코페르니쿠스나 케플러의 저서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더욱 정확하고 최근의 발전 동향까지를 두루 담고 있으므로 오류가 적을 것임은 당연하지 않은가.
또 뇌과학의 경우는 고대나 중세에는 전혀 없었던 학문이니 만큼 DNA 구조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프란시스 크릭의 『놀라운 가설』이 뇌과학의 현대 고전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도 현대 고전을 통해 시야를 넓혀왔고 지금도 넓혀가고 있다. 특히 C. 라이트 밀스의 『파워 엘리트』나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요한 호이징가의 『호모 루덴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등은 이미 읽었고 반복해서 읽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일등급 저작들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인간과 사회, 역사, 인류학, 정신분석학, 고고학 등에 대한 지식의 축적은 물론 지식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 까지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의 경우 한국에서 저술된 것이 거의 없다는 것. 물론 근대 이후 학문과 지식의 중심이 서양이었고 자연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대상을 분석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온 서양이었던 만큼, 서양식 근대화를 모방하여 숨 가쁘게 쫓아온 한국의 경우 신지식의 근원이 서양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그래도 만만치 않은 학문 전통을 지니고 있는 한국에서 세계적인 현대의 고전으로 인정받을 만한 저술이 전무하다는 사실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도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나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정도가 비록 서양에까지 알려지지는 않았다 해도 현대의 한국 고전에 속할 만 한 저작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