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즈 신상인 기자]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폭행 사건이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면서 우리 사회의 병든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묻지마 폭행, 여혐, 심신불안 사건 등이 하루가 멀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수역 폭행사건, 이보다 앞서 강서PC방 아르바이트 살인 사건은 국민청원 100만 명을 넘었고, 경남 거제에서 건장한 남성이 길에서 폐지를 줍던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고 숨지게 한 사건도 국민적 공분을 키운 바 있다.
특히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치정, 복수가 원인이던 과거의 사건 원인은 이제 묻지마, 조현병같은 정신병적 요소와 주취, 심신미약 등으로도 다양화되고 있다.
이런 경우 모든 국민은 '분노형 범죄'에서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지역사회, 국가 공권력 등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인식변화와 적극적인 안전의식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지켜낼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자칫 반여성적인 편견, 성 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가 여성에 대한 폭력, 남성우월주의 사상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도 나타나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수역 폭행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등록된 해당 청원은 18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30만 명이 넘어섰다.
이날 서울 동작경찰서는 여성 2명을 폭행 혐의로 20대 남성 3명 등을 입건했다. 이들은 전날 오전 4시께 지하철 7호선 이수역 근처 주점에서 시비가 붙은 끝에 서로 폭행한 혐의인데, 피해자라고 하는 한 여성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주점에서 남성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남성-여성의 성(性) 대결로 확산됐다.
지난달 31일에는 경남 거제시에서 20대 남성이 아무런 이유없이 폐지를 줍던 50대 여성을 30여분동안 잔혹하게 폭행해 숨지게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키가 132㎝에 불과한 여성이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 여성의 말을 무시한 채 180㎝의 건장한 체격의 남성은 폭행을 계속했고,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5시간여 만에 결국 숨졌다.
가해 남성인 박모 씨는 조사에서 "술에 취해 왜 그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 려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사이트에는 박 씨와 관련해 '강력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해 달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또 같은 지난달 우울증을 앓고 있던 20대 김모 씨는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신모 씨(21)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얼굴과 목 부위를 수십 차례 찌르는 등 잔인한 수법으로 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피의자 30대 김모 씨는 노래방 화장실에서 여성을 살해했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신상도 공개되지 않은 채 살인혐의에도 징역형 30년을 처벌받았다,
김 씨는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 여성 혐오 문제에 대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이 외에도 유사한 사건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불특정ㆍ다수를 향해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저지르는 살인이나 상해 사건은 왜 일어날까?
심리학과 교수의 말에 의하면 피의자가 정신 병력이 없다고 해도 '반사회적 성향을 갖고 있다면...'이거나 아직 진단받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상상 이상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만약 어느 정도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범행을 저질렀다면, 직장이 없거나 위축되는 등 자기 스스로에게서도 오는 분노로 인해 세상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ㆍ경제적으로 불안한 사회에서 자신의 박탈감이 더 크게 느껴지면서 억압된 분노가 더 과격하게 표출 될 수도 있고, 축적된 분노가 안쪽과 바깥 쪽으로 모두 터지면서 누구라도 좋으니 남도 죽고 자신도 죽겠다는 묻지마 살인이 된다고 한다.
개인적인 심리적 요인도 있겠지만, 사회적 긴장도가 높아지거나 불경기, 실업자 증가 등 사회적인 혼란상태에 처하게 되면 사익차원 보다는 화풀이 차원에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사회 전반에서 인식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 범죄형태이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 풍토 조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권일용 전 경찰청 과학수사관리관 범죄행동분석팀장은 "범행을 저지르는 짧은 시간에도 공격당하지 않을 상대라든지, 뒷수습이 쉬운 상대를 선택한 것"이라며 "이 경우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에도 자신이 하는 행위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거제 살인사건 당시 목격자들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범인은 "내가 경찰이다"라고 큰소리치고 범행 흔적을 감추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뚜렷한 범행동기가 없다면 '우발적 범죄', 술에 취한 상태라면 '주취 감형' 등으로 감형되는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묻지마 범죄를 흔히 '무동기 범죄'라고 하지만, 가해자 입장에선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분풀이 하는 것"이라며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갑을관계’도 명확해지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 범죄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취중 범죄는 형량이 깎인다는 범죄자들의 ‘학습효과’도 무시할 수가 없다"면서 "도리어 주취 범죄가 피해자에게 미치는 위험성이 더 크므로 가중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불우하게 사는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의 경우 묻지마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어떤 이유에서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기보다는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